한국은 기업 수출대국(big exporter)이다.
미국 제조기업의 복귀를 지원하는 단체 ‘리쇼어링 이니셔티브’는 지난 5일 낸 2023 연례 보고서에서 한국을 이렇게 진단했다. 지난해 미국에 새로 생긴 일자리 28만7299개 중 14%가 한국에서 나왔다고 분석하면서다. 한국의 미 일자리 기여도는 세계 1위였다.
반면, 한국은 비어가고 있다. 제조 기업들이 원가 절감을 위해 공장을 동남아로 옮긴 데 이어,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기술 기업들이 정책 보조금 많은 미국·유럽으로 나가면서다. 2022년 한국에 순유입된 외국인직접투자(FDI)는 국내총생산(GDP)의 1.5%에 불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0위다. 이에 비해 한국 기업들의 해외직접투자(ODI)는 2018년 이후 5년간 22.2% 늘었다. 지난해 633억8000만달러(약 87조7800억원)에 이르렀고, 5년간 총 3454억4000만달러(약 478조4700억원)를 기록했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은 “이러다 산업이 공동화될까 우려된다”며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라 해외로 갈 수밖에 없다면, 정부는 일본이나 동남아로 향하는 글로벌 기업들을 국내에 유치하기 위해 규제·노동시장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 떠나는 게 합리적 선택”이라니...
기업들은 현재로선 한국을 떠나는 게 ‘합리적 선택’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4월 OCI홀딩스는 말레이시아에 8500억원을 추가 투자해 총 2조원 규모의 태양광 및 반도체 폴리실리콘 생산기지를 구축기로 했다. 이 회사는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려 2020년 전북 군산 소재 공장 가동 중단 사태를 겪고 이듬해 설비를 말레이시아로 이전했다.
저렴한 인건비에, 수력 발전으로 전력을 100% 조달할 수 있어 미국⋅유럽 시장이 요구하는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조건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은 지난 5월 기자간담회에서 “설비관리 외에는 (국내에서) 신사업 계획은 없다”라고 말했다.
2차전지 소재인 동박 제조사 SK넥실리스는 지난해 11월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공장 가동을 시작했다. 전기 요금과 인건비 등 원가 경쟁력이 높은 이곳에 국내 정읍 공장 물량을 최대한 이관해 수익성을 높일 계획이다.
원가 외에, 경직된 규제 때문에 해외로 눈 돌리는 기업도 있다. 샴푸·린스 제조업체인 A사는 반려동물 시장이 급성장하자 동물용품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기존 설비로 동물용 목욕 용품을 제조하면 불법이 된다. 동물용 의약외품이라 별도 규정에 맞는 시설과 인력을 갖추고 검역본부장에게 별도로 신고해야 한다. 이 회사는 베트남에 공장을 짓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해외에선 한국 첨단기술 기업 유치 경쟁이 뜨겁다. 석유 경제를 디지털·기술 기반 경제로 전환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국내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중소기업 다수와 미팅을 했다. 사우디 측과 만났던 국내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사우디가 ‘돈은 얼마든 쓸테니 어떻게든 모래 위에 공장을 지어달라’는 식이었다”라며 “한국에선 별다른 혜택 없이 힘겹게 투자해온 터라, 사우디 제안을 받고 좀 허탈해졌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각 주 정부의 주지사들이 ‘영업사원’을 자처하고 있다. 지난 8일 방한한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시간 단위로 일정을 쪼개가며 한국 기업들을 만났다. 텍사스는 주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법을 따로 만들었다. 애벗 주지사는 지난 9일 국내 기자들과 만나 “텍사스 칩스법을 통해 조성한 기금으로 반도체 산학 연구를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반도체 외에도 지난 5년간 거의 모든 제조업 공장을 유치하려고 애썼다”라고 말했다. 세아그룹은 이날 텍사스주에 1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특수합금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조지아주는 세제 정책으로 한국 기업을 설득 중이다. 미국의 높은 인건비를 부담스러워하는 한국 기업들을 위해 지역 평균보다 급여를 10% 더 주는 외국 기업엔 5년 간 직원 1인당 5000달러의 세액공제와 최대 10년까지 세액감면 혜택을 준다. 한국과 조지아주의 무역 규모는 지난해만 158억 달러로 주 전체 교역의 10%를 차지하며, SK이노베이션·금호타이어·LX하우시스 등 140여개의 한국 기업 공장들이 ‘코리안 벨트’ 이룰 정도다. 인디애나주는 한국에 사무소를 열고 한국 중소기업까지 유치 중이다. 조지아에 진출한 한 소재 업체 관계자는 "미국 진출을 결정하기까지는 쉽지 않았지만 다양한 인센티브와 비즈니스에 친화적 환경을 보고 나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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